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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Harry Potter 2010/01/19 22:32HP 앤솔로지 발매 축설
안녕
아침부터 질척질척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 늦도록 까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점차 길어지는 해가 겨울이 지나가나보다 싶게 느껴지더니, 며칠 사이 다시 찬 기운이 몰려오고는 오늘에 와서 이내 비를 내리는 것이었다. 길게 늘어지듯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다 손에 든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을 적시는 씁쓸함 서린 물기에 빗소리가 더해져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온도가 밀려왔다. 몹쓸 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봄이 이제와 바싹 다가와야 했음에도.
봄인가―,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누가 말했었는지, 꽃잎이 돋아나는 계절이 돌아왔다고.
창문 너머를 보던 눈을 돌리자 아침에 부엉이 집배원이 배달해온 편지 한 장이 시선에 가득 찼다. 몇 년 만에야 받아보는 편지였던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을 그 양피지 한 장을 바라며 지내 왔었는지도 몰랐다. 우습게도 유리창을 두드리는 부엉이의 날갯짓소리에 또 다시 기대를 품어버리고 말았다, 또 다시 헛된 기대로 남아 잊혀 갈 것임이 분명할 텐데도.
호그와트에서의 마지막 날, 스치고 지나가는 인사조차도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던 그 날이 곧이 그대로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이라는 인사는 그저 혀끝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다. 볼 수 없다―라던가, 전해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으므로, 다만 지나치는 그녀의 얼굴에 담긴 미소만을 망연히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투명한 빛이 언제고, 언제고, 사라지지 않고 그 곳에 맺혀 있기를 다만 빌었었다. 아니, 마지막이 될 거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는 건 이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없는 세상 따위야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곁에 내가 있지 않다는 것은 누가 지적해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상상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그러나 끄트머리에 가까스로 매달린 한낱 희망 따위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웃음을 가득 꽃피우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지지 않은 마음만을 간직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어릴 적과 같은 용기를 내지 못해 먼저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다. 거절할 것이 두려웠다. 이미 한번 거부당한 나를 이젠 생각지도 않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녀석과 함께 있으며 행복한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그녀를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에 넌덜머리가 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모두 우스운 생각일 뿐이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곱씹어봤자 되돌아오는 건 허망한 그리움뿐인 우스운 일이었다.
몇 번이고 들어다봐 이젠 그 가느다랗고 단정한 필체로 적어 내려간 내용을 이미 외울 지경이 되어버린 편지를 다시 손에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양피지의 촉감에 혹시나 그녀의 손길이 아직 남아있을까 조심스러워하며.
「세브― 잘 지내고 있니? 졸업 이후에 편지 한 통 보내주지 않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나버린 건지 모르겠어. 너는 지금껏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일 것 같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 근처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걸.
…나 이번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이제 에반스가 아니게 되어. 제임스와 돌아오는 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야. 혹시 결혼식에 와줄 수 있을까? 네 얼굴도 보고 싶고, 너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올리고 싶어. ―소중한 마음을 담아, 릴리」
길게 감아 올라간 L에서부터 y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이름 릴리(Lily)를 적은 그 한 단어가 가슴에 계속 맴돌아 양피지가 닳도록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소중한 나의 소녀.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릴리. 이러는 내가 우습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참하다는 감정마저 일어 쓰라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건 지금까지도 바로 이 순간까지도 그녀의 연녹빛 눈동자를 그리는 마음이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 봄을 닮은 연한 잎사귀의 빛을 가득 담고 있던 에메랄드 눈동자.
나는 그녀의 말대로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따스한 봄기운에 다가갈 수 없는, 단 한마디 말을 건넬 용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바보였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자가 정말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어보는 것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 하겠어 이렇게 빗소리만 메우는 공기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반스가 아닌, 포터라는 성을 갖게 될 그녀는 지금도 그 녀석과 함께 웃고 있을까.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그 봄 향기 가득한 웃음을 이젠 그 녀석을 향해 짓고 있을까. 겨울의 끝자락에 내리는 빗방울에 오히려 목이 매여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 것일까….
잔에 남아있던 한 모금의 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내 목을 넘어가는 씁쓸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망설이다 겨우 깃펜을 집어 들고는 서랍장을 뒤적여 남아있는 양피지 조각을 하나 꺼내었다. 이렇게나 늦장을 부리고 있지만, 그 누군가가 말했듯 사실 저 빗소리가 지나가고 나면 연푸른 잎사귀들이 돋아나고 쌓여있던 눈이 녹으며 주위에 한 가득 꽃향내가 망울질 것이 분명했다. 혼자 그 모든 변화들을 거부하며 지나간 시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는 이미 한 아름의 붉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어내고 있었으니.
'릴리 에반스에게'. 포터라는 성을 적지 않는 것은 나의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결코 그녀를 포터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나의 릴리, 나의 백합이었으므로. 그러나 그 아래로 무슨 말을 적어 내려가야 할지 몰라 다시 머뭇거렸다. 잠시 창문 너머의 빗소리에 귀 기울이다 마음을 다 잡고 깃펜을 꽉 쥐었다.
「릴리 에반스에게.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미안하지만 결혼식에는 못 갈 것 같아. 너의 가는 길 앞에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어. …안녕. ―세베루스」
:지인분의 부탁으로 인해서 쓴 HP 앤솔로지 발매 축하 용 소설이었는데, 사정으로 인해 앤솔로지에는 포함이 되지 않아요. 저로서는 얼마만에 쓰는 해리포터인지 몰라서 실리는 게 민망했는데 덕분에 오히려 다행이구...ㅋㅋㅋ 두페이지 짤이라서 스토리 전개는 못 하겠구나, 싶어서 그냥 독백으로 한 장면만 묘사해보았습니다.
사실은 7권 읽고 난 이후부터 줄곧 쓰고 싶었던 세브 교수님 이야기가 있었는데, 축설 쓰고 나니까 그게 문득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깨작깨작 구상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렵네요. 프히, 며칠 째 서두만 붙잡고 있다가 답답해서 관두고, 오랜만에 별호그나 들낙거리고 있습니다. 몇 년전에는 팬아트 게시판에 모두 익숙한 그림체들로 가득 찼었는데 이젠 아는 분 하나 없는 쓸쓸함(..) 흑 ;ㅅ; 다들 뭐하고 지내시려나 궁금해졌습니다. 2010년에 한 번 더 파더스데이 열리면 좋을텐데, 라는 사심을 가져봅니다.
참, 1월 23/24일 서코 양일, 1월 31일 부코 일요일. Magical Me 에서 해리포터 앤솔로지가 발매됩니다. 해리포터는 마, 마이너지만 괜찮아요! 제가 감상용으로 한 권, 소장용으로 한 권 살테니까!< 모두 아는 분들의 작품이라서 원고가 궁금해서 덜덜덜. 선배님께 부탁해 뒀으니 서코가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려야지요 ㅋㅋㅋ
제가 그저 여러분들 사랑합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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